평화운동가 참된 평화는 생명 깊은 차원에서 사람들 간의 연대를 통해서만이 실현될 수 있습니다.

평화를 위한 요새 1971. 12. 3 / 일본 주간지 '주간요미우리' 게재

얼마 전 <오키나와 전투>라는 책을 읽었다. 류큐 정부가 오키나와현의 역사를 정리한 일련의 연구서 중 한권이다. 이 책은 1945년 오키나와 섬에서 일어난 미국의 공격과 폭격에 대해 다루고 있다. 20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전투였다.

약 천 명에 달하는 무명의 사람들이 경험한 공포를 서술해놓은 충격적 기록이다. 그 두꺼운 책 속에서 반전 감정이나 이념적 저항의 흔적은 전혀 찾을 수 없다. 다소 제한적이고 냉철한 방식으로 사실을 묘사함으로써 철저히 사실만을 기록하는 기법이 오히려 놀라울 뿐이다. 전개 방식의 평이함과 냉혹함은 독자를 사로잡아 자신의 존재 자체를 휘저어놓는다. 읽고 또다시 읽어내려가며 그제서야 겨우 분노와 격분을 추스르게 되었다.

가장 고통스러운 이야기 중 하나는, 당시 39세이던 아라구수쿠의 한 농가 부인의 경험을 묘사한다. 미 해군의 폭격이 시작되었을 때, 그녀는 가족과 피난처를 찾아 근처 도랑으로 대피했다. 하지만 전투가 격렬해지자, 그들은 끊임없이 안전한 장소를 찾아 헤메다, 이곳저곳으로 정신없이 내몰리게 되고 말았다. 그 와중에 부인의 가족은 하나둘 쓰러져갔다.

첫 희생자는 열여덟 살 된 그녀의 딸이었다. 부상자를 간호하기 위해, 개천에서 얼굴을 씻고 있던 딸의 등에 파편이 튀어 박혔다. 그리고 3일 후 그녀는 사망했다. 부인의 여동생 또한 등에 상처를 입고, 딸이 죽은 지 두 시간 후 세상을 떠났다.

“모든 것이 그저 혼란스러울 뿐이었어요. 한 명 한 명을 보살피느라 딴생각을 할 수도 없었지요. 다섯살된 딸은 손목과 배에 부상을 당해 벌써 그녀의 장기가 배 밖으로 나오고 있던 상황이었어요. 그때 이미 제 딸은 죽은 겁니다. 그런데 제 어머니가 하도 소란을 피우는 바람에 저 또한 혼란스러워져 저도 모르게 소리치기 시작했어요. ‘엄마가 내 딸을 밟고 뱃속에서 장기를 끄집어내고 있어요!’ 어머니는 결코 그런 일을 한 적이 없다고 항상 말씀했죠.”

여전히 주변에는 포격이 가해졌고, 부인은 계속 피난처를 찾아 헤맸다. “겨우 마에히라의 한 빈집에 대피했어요. 그런데 아마도 다시 폭격이 시작되었던 것 같아요. 왜냐하면 이번에는 제가 파편에 맞았거든요. 품에는 18개월 된 아기를 안고 있었는데, 아기 역시 손목과 오른쪽 팔 그리고 이마와 가슴에 상처가 나 피가 흐르고 있었어요. 둘째 아들 쓰토무는 머리에 중상을 입고 폭발의 충격으로 쓰러져있었지요. 주변을 둘러보니, 시어머니 시체가 보였어요. 폭발 중에 즉사하신 거지요……”

“이모님은 아라카키에서 돌아가셨어요. 그곳의 포탄과 폭발은 정말 끔찍했어요. 난데없이 사람의 살 조각이 공중에서 날라오고, 곳곳에는 온통 시체가 쌓여있었어요.”

부인의 아기는 얼마후 식량 부족으로 죽고말았다. 전쟁 때문에 그녀는 직계가족 중 10명을 잃고 말았다. 이 얼마나 무서운 학살인가!

그런데 그녀의 경험은 결코 특별한 예외가 아니다. 인터뷰에 응한 천 명 거의 모두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사실 인터뷰에 응한 사람들 말고도 더욱 가혹하고 무시무시한 운명의 이야기를 들려줄 사람들이 있을지도 모른다. 자료를 수집하던 사람들이 경험담을 이야기해달라고 부탁하자, 한 여성은 그 어떤 것도 말할 수 없다고 강하게 거부하며 이렇게 말했다. “나한테 전쟁에 관해 이야기 하라고요? 안타깝지만 아마도 내가 입을 여는 순간, 완전히 정신이 나가버려 당신을 공격하고 말거예요!”

전쟁이 남긴 상처는 얼마나 참옥하고 비참한가! 얼마나 어리석고 무의미한 파멸을 초래하는가! 그리고 그 피로 물든 화염속에서 가장 고통받고 신음하며 울부짓는 사람들은 다름 아닌 이름 없는 민중이다. 바로 그들의 비명, 그 누구에게도 호소하지 못하는 이 사람들의 소리에 우리는 귀 기울여야 한다. 존중해야한다. 왜냐하면 진실과 정직함으로 울려퍼지는 그들의 목소리에는 그 어떤 고결한 평화주의 성명서보다 강렬한 설득력이 있기때문이다. 이 사람들의 외침이야말로 반전(反戰)과 항구적 평화실현을 위한 중요한 모든 운동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안타깝게도 이 사실을 간과하는 사람들이 여전히 존재한다. 아마도 이름 없는 이 민중의 외침을 출발점으로 하기에는 너무나 평범하고 너무나 흔한 일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바로 그러한 생각 때문에 오키나와 사람들의 그 참혹한 경험은 아직도 전 세계 곳곳에서 재현되고 있다. 그 피비린내의 악취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다. 아우슈비츠, 히로시마, 나가사키, 한국전쟁, 베트남전쟁, 동파키스탄 -- 지난 20년 내지 30년간의 분쟁과 비극만을 돌이켜보아도, ‘역사는 인간의 범죄와 어리석음의 끊임없는 반복’이라는 사실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세요> 태평양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일본 학생들의 쪽지를 수록한 책이다. 책에는 그러한 어리석음을 통렬하게 비난하는 구절이 있다. “잔인함—인간의 본성에 얼마나 뿌리 깊게 박혀있는가! 인간 스스로 이 세계를 만들어낸 후, 인간은 조금도 진보하지 못했다고 나는 확신한다. 어떠한 말로 미화한다해도, 지금 현재의 전쟁은 공정함이나 정의의 문제가 절대 아니다. 단지 민족 간에 존재하는 적개심의 분출일 뿐이다. 그렇기에 서로가 서로를 완전히 말살시킬 때까지 이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얼마나 무시무시하고 비열한 일인가! 인류, 참으로 유인원의 사촌이란 말인가!”

하지만 그러한 어리석음에 맞서고, 인류에게 참된 사랑과 정의감을 불러일으킬 진실된 인간주의의 소리는 국제정치의 영역에서 아직도 무력하게 들린다. 전 세계가 격노해서 핵실험 반대를 외쳤지만, (알래스카 알류산 열도) 암치카 같은 곳에서는 핵실험이 계속되었다.

도대체 어떻게 인간이 지닌 그 잔혹함의 고삐가 풀려버린 것인가? 간단히 말하자면, 민족주의와 국가이익이라는 논리가 원초적인 인간의 본능을 더욱 정당화하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성에 맞서려면, 우리 각자가 자신이 아무리 힘없고 무능한 존재라고 느낄지라도, 우리 자신의 마음속 깊은 곳에 평화를 위한 요새를 건설해야 한다. 끝까지 저항할 수 있고, 끊임없는 전쟁의 부름을 침묵시킬 수 있는 그러한 요새를 건설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인류의 비극적 폭력성을 교화하고, 인류의 에너지를 새로운 방향으로 전화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어떤 사람은 그런 호소를, 우리 시대의 복잡한 정치적 현실을 전혀 이해 못 하는 순진한 감성주의라고 비웃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우리가 반드시 해야 할 일을 이루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만일 감성주의라면, 그렇다면 나는 어떠한 비난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있다. 지금 가장 중요한 질문은 바로 우리가 <오키나와 전투>와 같은 책을 읽으며 경험하게 되는 고통과 분노를 어떻게 활용하여, 평화를 위한 실질적이고 세계적인 외침으로 확대해갈 것인가이다.

'핵 알레르기'라는 용어가 최근 일본에서 자주 사용되고 있다. 일본 사람들이 핵무기 관련 문제에 대해 과도하게 민감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만일 전쟁의 가능성에 대해 둔해지고, 무감각해지며, 심지어 핵무기의 공포에 대해 무신경해진다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파멸의 위험으로 몰락하게 될 것이다. 또한 반복적으로 핵무기 실험을 할 때마다 그 재앙의 어두운 그림자는 더욱더 가까이 다가올 것이다.

나는 여러 번 오키나와를 방문했다. 열대지방 특유의 파란 하늘, 산호 가득한 바다, 눈부신 햇빛, 참으로 오키나와는 최고의 자연미를 갖춘 청정지역이다. 반대로, 자연의 아름다움 속에 존재하는 인간세계의 분위기는 얼마나 암울하고 강압적인가! 세계 패권과 지배력을 차지하기 위한 전략 전술의 그림자에 가려진 그러한 사회이다. 과거, 이 아름다운 섬을 생지옥으로 만들어버린 전쟁이라는 괴물은 아직도 불길한 기운을 내뿜고 있다. 안타깝게도, 그 어느 때보다 더욱 불길하게 도사리고 있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