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은 평화운동가, 불교철학자, 교육자, 작가 그리고 시인으로 대화를 통한 평화 증진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평화와 비즈니스 1991. 4. 21 / 필리핀대학교 강연

오늘은 전통에 빛나는 귀 대학의 이렇게 화려한 자리에서 스피치를 하게 되어, 아부에바 총장과 로만 학장, 아구르토 학부장을 비롯해 여러 선생님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경영과정을 개설한 지 75주년이라는 가절을 맞이하여 사회로 나가는 졸업생 여러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저는 귀국과 세계의 미래를 열어 나아갈 재능이 뛰어난 여러분과 만나게 되어 기쁩니다. 부모님이 얼마나 기뻐하고 영예롭게 생각하실까요.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저도 대학을 창립한 사람으로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저도 같은 세계시민의 한 사람으로서, 한 나라 한 민족의 처지를 뛰어넘어 귀국의 영웅 호세 리살이 지향한 ‘세계시민’인 여러분에게 느낀바 일단(一端)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젊어서부터 “사업을 좌우하라, 사업에 좌우되지 말라.”는 말을 매우 좋아했습니다. 사업은 본래 경제적인 효율을 올리고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제일의 목표입니다. 만일 사업가가 사업에 좌우되어 ‘기업논리’나 ‘자본논리’ 외에는 안중에 없다면, 결국 앞날은 이익을 둘러싼 투쟁일 뿐이며, 그것은 때때로 전쟁요인으로까지 확대되었습니다.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사업에 공헌하려면 ‘인간논리’를 기본으로 삼아서 자본논리를 리드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저는 평화를 지향하는 사업가가 지녀야 할 정신적 신념으로 명백하게 ‘공정(公正)’한 정신을 들고 싶습니다. ‘공정’이라는 말에는 ‘공평’, ‘평등’, 그리고 ‘정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저는 귀국의 말 ‘카타룬간’이 흥미 깊게도 ‘공정’이라는 말에 ‘평등’과 ‘정의’라는 두 가지 뜻을 포함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신선한 감동을 느꼈습니다.

경제활동으로 인해 부유한 나라 부유한 계층은 더욱 부유해지고, 빈약한 나라 빈약한 계층은 더욱 빈약해지는 모순을 ‘공정’한 정신을 지닌 사업가는 결코 간과하지 않습니다.

지구환경을 파괴하고 생태계의 균형을 붕괴시키면서 독주하는 경제성장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공정한 사람은 잘 압니다. 더구나 규제가 완화된 나라에 공해(公害)를 ‘수출’하는 일 등을 용서할 리 없습니다. 일본은 특히 이런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원래 ‘공정’한 정신은 처음부터 부여된 것이 아닙니다. 아부에바 총장이 소카대학교 강연에서 소개한, 귀국이 지닌 ‘하야니한(공동사회에서의 상호부조)’ 정신 같은 민족의 전통적인 아름다운 특성은 시대적인 시련에 단련됨으로써 획득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에 따라 ‘공정한 정신’은, 소박한 민족감정에 강철 같은 강도와, 햇빛 같은 따뜻함과 하늘 같은 넓은 마음을 함께 지닌, 보편적인 정신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그 시련과 갈등은 귀 대학 출신의 작가 스테반 하벨야나가 쓴 명작 《새벽을 보지 않고》에 잘 묘사되어 있습니다. 저는 그 책을 읽어보고 제2차 세계대전 중 일본군이 저지른 포학무도를 새삼 떠올리며 숙연히 깊이 사과하고 싶었으며, 평화를 위한 우정의 길을 어떻게 해서든지 다음 세대에는 꼭 열고자 굳게 염원했습니다.

그 작품에는 다정한 젊은 사촌 삼형제가 한쪽은 게릴라로, 다른 한쪽은 일본군에 협력하는 경찰로 갈려 싸우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일본군을 경계하며 잠복 중이던 어느 날 밤, 적 속에 사촌 폴로가 있음을 알고 카딩과 곤동이 주고받는 말이 인상적인 장면이 있습니다.

― “이것은 우스운 전쟁이다.” 그(곤동)는 한숨을 쉬었다.

“어느 인간이 자기 형제와 전투하니.”

“곤동” 하고 카딩이 말했다.

“폴로는 여기 있는 우리 모두에게 친구이기도 하고 사촌이기도 하다. 하지만 우리에게 어떤 선택의 자유가 있는가?”

“그래도 상대방의 사기(士氣)를 떨어뜨리게 하면 충분하지 않겠는가. 이런 전쟁 따위는 끝나지 않을까.” ―

폭력과 비폭력을 둘러싸고 ‘공정’한 판단과 선택을 하기 위해 태연한 분위기에서 뼈에 사무치는 모색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편이 올바른지는 아마 답이 없는 문제이며, 여기에 비극이 비극이라는 근거가 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양자가 서로 촉발해야 하며, 변증법적인 말을 빌리면 골육의 정을 소중히 여기는 필리핀의 전통을 체현(體現)하는 곤동적인 ‘다정함’이 ‘정(正)’이 되고, 카딩적인 ‘강함’ ‘냉철함’이 ‘반(反)’이 되어 서로 촉발하여, 더욱 고차원적인 ‘합(合)’의 세계를 지향해야 합니다.

저는 진실한 공정(公正)은 ‘부분관(部分觀)’에서 ‘전체관(全體觀)’을 향한 도약이고, 그런 차원에서 제시하는 보편적인 정신이라고 생각합니다.

비즈니스세계에서도 그런 보편적인 정신은, 한 기업이나 한 나라만이 차지하는 ‘부분익(部分益)’에 집착하지 않고, 지구인류라는 ‘전체익(全體益)’에 기대서, 때로는 자기이해(自己利害)를 초월하여 고귀한 자기희생마저 꺼리지 않는, ‘공정’한 판단을 틀림없이 가능하게 할 것입니다.

호세 리살은 유명한 《체제전복》 끝부분에서 어느 등장인물을 통해 “우리나라의 자유를 검으로 싸워서 쟁취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 자신이 자유롭게 됨으로써 자유를 쟁취해야 한다.”고 호소했습니다.

‘인간논리’로 ‘자본논리’를 리드

리살은 이상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면서도 비폭력이 폭력에, 정신이 힘에 승리하는 ‘아득한 꿈’을 좇고 있었습니다. 그 정신적인 승리는 ‘기업논리’나 ‘자본논리’에 대한 ‘인간논리’가 승리한 다른 말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여러분에게 물어야 할 일인데, 귀국의 1986년 2월의 혁명은 이와 같은 리살이 꿈꾸는 ‘위대한 일보(一步)’가 아니었을까요? 비폭력을 바탕으로 한 민중의 힘으로 17년간 이어진 독재정권을 타도한 위업은 세계역사상 찬연히 빛나는 일입니다.

아부에바 총장이 취임연설에서 “우리 인민은 평화와 자유에 대한 사랑, 공동체와 연대의식, 인간존중, 매우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본성이라는 우리 민족이 지닌 깊은 미질(美質)을 행동으로 나타냈다.”고 형용하였듯이, 참으로 위대하고 역사적인 ‘일보’였습니다.

여러분은 2월혁명이 표방하였으나 아직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다시 한 걸음 위대한 완성을 향해 나아가야 할 존귀한 사명을 지닌 분들입니다.

저는 호세 리살의 청춘시(詩)를 평화와 번영을 향한 희망에 넘치는 앞날을 생각하며 보내드리겠습니다.

침착한 얼굴을 드시오.

이날에

필리핀의 젊은이여!

그대들의 자애와 용기를 찬연히 빛내라

우리 조국의 때묻지 않은 희망에 찬 그대들이여!

위대한 혼을 지닌 그대들이여

고귀한 사색으로 그 혼을 가득히 채우라

그리고 힘차게 높여라

청렬(淸冽)한 정신을 바람보다도 빨리

영광스런 정상의 길에 오르라!

끝으로 젊은 여러분의 위대한 인생의 역사와 활약을 기원하고, 또한 위대한 귀 대학이 더욱 발전하고, 영원한 전통이 영광에 빛나기를 진심으로 기원하며 축하의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큰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