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은 평화운동가, 불교철학자, 교육자, 작가 그리고 시인으로 대화를 통한 평화 증진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새로운 민중의 모습을 찾아서 1950. 4. 22 / 베이징대학교 강연

먼저 한 민간인에 불과한 제게 이런 자리에서 소신을 발표하게 해주신 것은 저로서는 대단한 영광입니다. 리셴린(李羨林) 부총장, 왕주시(王竹溪) 부총장을 비롯해 여러 교수님과 학생 여러분에게 깊이 감사드립니다.

불과 20여일 전, 일본의 저명한 중국문학자 요시카와 고지로 박사가 서거하셨습니다. 중국에도 지인이 많은 박사는 중국문명을 가리켜 ‘신(神)이 없는 문명’이라고 명명했습니다.

중국문명 어디를 찾아봐도 분명히 그리스도교나 이슬람교처럼 신의 존재는 찾을 수 없고, 같은 아시아에서도 일본과 인도는 예로부터 많은 신화가 구전되었지만, 중국은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하지 않는다.’는 공자의 말이 상징하듯 일찍이 신화와 결별한 아마 세계에 유례가 드문 나라일 것입니다.

‘신이 없는 문명’은 참으로 묘한 여운을 남긴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런 중국문명은 사람들의 인생관이나 세계관에 어떤 특징을 가져왔을까요. 부족한 제가 말씀 드린다면 “개별(個別)을 통해 보통(普通)을 본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사마천이 던진 질문의 의미

한가지 예를 들면, 사마천(司馬遷)은 《사기史記》 ‘열전(列傳)’의 서두에서 “천도(天道)는 편애하는 일 없이 언제나 착한 사람의 편에 선다.”는 설을 반박해, 선인이 망하고 악인이 번영하는 역사적 사실을 설명한 다음, 다음과 같이 유명한 질문을 했습니다.

“나는 심히 당혹해하고 있다. 천도(天道)는 과연 시(是)인가, 비(非)인가.”

이 질문은 일본에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저는 ‘천도(天道)’를 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분명히 거기에는 유교나 도교의 영향도 있을 것이고, 현대에서 보면 봉건적 잔재도 많이 발견되겠지요. 그러나 저는 거기에서 당시 사람들이 품고 있던 보편성에 대한 희구(希求)를 함께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과 자연을 관철하는 어떤 종류의 보편적인 법칙성에 대한 바람은 중국민족에 한정하지 않고 인간사회의 변함없는 본연의 자세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제가 더욱 주목하는 것은 사마천의 질문에서 ‘천도’라는 보편적인 법칙성이 ‘시인가, 비인가’ 하는 개별차원에서 날카롭게 제기했다는 점입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사마천은 ‘이릉(李陵)의 화(禍)’에 연루되어 궁형(宮刑)에 처해졌습니다. 그 무념(無念)의 마음을 담아 쓴 책이 《사기史記》라는 것도 두루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릉의 화’는 사마천이라는 한 인간에게 덮친 뼈아픈 운명으로, 그런 의미에서 사건의 시비, 선악을 결정해야 하는 눈에 띄는 개별적 사건이었습니다.

즉 사마천은 ‘천도’ 그 자체를 묻는 것이 아니라, 자기 몸이 비극이라는 개별성 위에 나타난 ‘천도’의 시비를 바로잡으려고 했습니다. 제가 ‘개별을 통해 보편을 본다’고 말씀 드린 것도 그런 의미에서입니다.

이에 비해 ‘신(神)이 있는 문명’, 예를 들어 유럽 여러 민족의 경우는 중국과는 반대로 신이라는 ‘보편을 통해 개별을 본다’는 경향이 지배적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신은 인간의 손이 닿지 않는 곳에서 세상을 지배하고 있어,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그 절대보편인 신의 섭리를 어떻게 이 세상에 실현할까 하는, 신 쪽에서 인간 쪽으로 일방적인 흐름만이 있습니다.

사마천처럼 인간 쪽에서 ‘천도’를 묻는 일은 일절 허용되지 않았습니다. 유럽역사에서 사마천의 질문이 나타난 때는 ‘신의 죽음’이 선고된 후인, 기껏해야 19세기 말부터입니다.

따라서 유럽의 경우 인간이나 자연을 인식할 때, 아무래도 신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보고 맙니다. 그들에게는 프리즘이 보편적일지도 모르지만, 역사와 전통이 다른 민족에게는 그대로 적용하려 해도 강압에 불과합니다. 결과는 침략적·배외적인 식민지주의가 신의 베일을 뒤집어쓰고 횡행하고 맙니다.

‘개별을 통해 보편을 본다’는 형태로 제가 요약한 중국민족의 전통에는 분명히 그것과는 다른 인간관·세계관이 잉태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모종의 프리즘을 통해 사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현실 자체에 눈을 돌리고 보편적인 법칙성을 찾아내려는 자세입니다.

저와 친교가 있는 영국의 역사가 토인비는 만년(晩年)에 ‘중국이 앞으로 세계사의 축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그는 가장 큰 이유로 ‘오랜 중국역사의 흐름에서 중국민족이 몸에 익힌 세계정신’을 들었습니다.

그리스도교에는 아주 비판적인 그는, 중국사에 축적된 정신적 유산 속에서 침략적 색채가 강한 유럽의 보편주의와는 다른 어떤 세계정신의 가능성을 틀림없이 보았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저는 중국 수천 년의 역사를 그대로 미화할 생각은 없습니다. 분열, 내란, 침입, 잦은 홍수와 가뭄으로 민중이 도탄에 빠진 일이 헤아릴 수 없을 정도입니다.

금세기에 들어 몇 번이나 일어난 혁명의 목적이 무엇보다 식민지배를 타도하고 아울러 숙환(宿患)처럼 민중의 마음을 부식(腐蝕)시킨 봉건제도를 전복하는 것이었음을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정신적 유산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장기간 배양된 정신의 원질(原質)이라는 것은 쉽게 바뀌는 것이 아니고, 또 전부 바꾸는 것이 상책이라고 할 수도 없겠지요. 오히려 그런 원질을 좋은 방향, 건설적 방향으로 연마하는 것이 중국뿐만 아니라 아시아나 세계를 위해 앞으로 틀림없이 다대한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루쉰(魯迅)이 ‘발굴’한 인간의 근본형상

2루쉰의 맑은 눈에서 제가 느낀 것도 민족의 원질을 주시하는 예리한 시선입니다. 루쉰은 모든 프리즘을 배제하고 현실만을 응시하려고 합니다. 인간을 논하는 경우에도 많은 겉치레를 벗겨내고 민중의 근본형상에 육박합니다.

저도 애독자 중 한 사람입니다. 특히 인간이 인간을 말살하고 부끄러워하지 않는 ‘식인(食人)’을 주제로 한 《광인일기狂人日記》 말미에 “아직 인간을 먹어보지 못한 어린이가 있을까. 어린이를 구해라….”고 하는 고통스러운 외침은 윤리감각이 무너지듯 독자의 가슴을 파고듭니다.

최하층 빈농을 다룬 《아阿Q정전正傳》과 《광인일기》에서 “그러나 우리 아Q는 그런 겁쟁이가 아니다. 그는 언제나 의기양양하다. 이것 또한 중국의 정신문명이 세계에 으뜸인 하나의 증거일지도 모른다.”와 같은 간결한 묘사를 접할 때, 우둔하면서도 끈질기게 살아가는 잡초처럼 다기진 민중의 근본형상이 선명히 떠오릅니다.

그것은 저의 뇌리에, 일찍이 파리의 불량소년의 마음 깊숙한 곳에서 ‘파리의 공기 속에 있는 관념에서 나오는 일종의 비부패성’을 발견한 빅토르 위고의 안목을 떠올리게 합니다.

루쉰의 문학운동이 반드시 성공했다고 할 수는 없겠지요. 그러나 루쉰이 평생의 과제로 삼은 것을 신중국이 확실히 계승했다고 저는 믿습니다.

일전에 제가 일본에서 뵌 작가 바진(巴金) 씨는 “나는 적과 싸우기 위해 글을 썼다.”고 밝혀 많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바진 씨는 “내 적은 무엇인가. 낡은 모든 전통관념, 사회진보와 인간성의 신장을 방해하는 모든 불합리한 제도, 사랑을 파괴하는 모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 바진 씨의 풍모에서 루쉰과 공통되는, 민중의 적과 싸우는 ‘전사’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좀 더 말하면 ‘인민에게 봉사한다’ ‘인민에게 복무한다’는 슬로건이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중국에서 일관되게 계속된 사실을 저는 조용히 지켜보고 있습니다. 거기에 역사를 개척하는 새로운 민중의 모습이 태동하고 있다고 예상할 수 있습니다./p>

또 이 부분에 관한 것은 여러분의 고찰을 기다리는 수밖에 없지만, 예를 들어 사실에 근거를 두고 진리를 추구한다는 ‘실사구시(實事求是)’라는 말에는 제가 앞서 말씀 드린 ‘개별을 통해 보편을 본다’는 것과 공통되는 것은 없을까요.

적어도 저는 ‘실사구시’는 사마천의 ‘시냐, 비냐’ 하는 질문의 패턴에 상징되는 중국의 정신적 유산 중 매우 양질(良質)인 부분, 즉 현실을 직시하고 거기에서 현실을 재구성하는 정신의 본래 자세와 맥락이 깊이 통한다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현대는 ‘대혼란’의 시대입니다. 고(故) 저우언라이 총리는 “21세기에 이르는 20세기의 마지막 25년이 더욱 중요한 시기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만큼 민중끼리 국경을 초월한 세계적인 연대를 이루지 못하면, 언제 또 전쟁의 참화를 당할지 모릅니다.

중국의 과학사연구에 거대한 발자취를 남긴 조지프 니덤은 대저(大著) 《중국의 과학과 문명》 제1권의 서문에서 “지금 우리는 일하는 모든 사람을 보편적이고 협동적인 공동체로 결합시키는 새로운 보편주의의 새벽에 와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 ‘새로운 보편주의’의 주역이 바로 새로운 민중, 서민의 모습이어야 하겠지요. 그리고 중국의 장대한 역사와 현실의 행보는 그런 미래를 개척할 헤아릴 수 없는 에너지를 간직하고 있다고 말씀드리고, 이만 저의 강연을 마치겠습니다. (큰 박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