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은 평화운동가, 불교철학자, 교육자, 작가 그리고 시인으로 대화를 통한 평화 증진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 Words of Wisdom 희망찬 내일을 위한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의 명언

  • Dialogue with Nature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의 사진 작품, 자연과의 대화

  • The Life Story of Daisaku Ikeda 이케다 다이사쿠 생애

에세이

아름다운 지구

벚꽃 반점(斑點)

연못은 봄마다 꽃이 핀 거울로 변했다.
꽃잎 하나하나가 그윽한 향기를 풍기는 얇은 명주 스카프처럼 가볍게 앉듯이 연못에 뿌려졌다. 지기 시작한 벚꽃의 한 잎 한 잎. 금붕어에게는 “하늘에 구름이 피어올랐다”고 보이는 것일까. 그렇게 생각하자 핑크색 꽃잎은 노을빛 구름의 비늘과 같아 보였다. 벚꽃 무리는 바람에 흔들릴 때마다 형태를 바꾸어 연못 속에는 움직이는 만화경(萬華鏡)과 같이 보였을지도 모른다.

학회 본부 구석의 조그만 연못에 화창한 봄볕을 떨어뜨리고 있었다. 비단잉어와 봄의 풍경 전체가 곱게 장식된 비단같았다. 벚꽃 반점으로 아로새긴 나전(螺鈿)처럼 수면을 장식했다. 파도 너울에 가지 늘어진 벚나무 그림자가 희미하게 비치어 물바닥까지 스며드는 듯한 하늘이 떠올라 있었다. 조그만 연못은 작지 않았다. 천지를 감싸고 무엇 하나 부족한 것 없는, 작으면서도 광대한 하나의 우주였다. 올려다보니 봄 구름이 흘러가고 있었다. 흘러가는 구름은 하늘의 꽃. 사람도 또한 하나의 연못에 사는 걸까.

여러 가지 일
생각나는 벚꽃인가

시인 바쇼(芭蕉)의 감개는 모두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해마다 벚꽃 소식과 함께 인생의 연륜을 새기며 살아왔다. 내 소년 시절, 오타구 고우쟈의 집에는 넓은 정원 안에 큰 벚나무가 있었다. 매년 봄, 하늘도 대지도 화려하고 아름답게 물들어 우리집은 북적거리는 꽃의 숙소가 되었다. 집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간 후 그 벚나무가 언제인지 베어져 버렸고, 전쟁 중에는 정원이 군수공장으로 변해 버렸다. 도쿄는 연일 계속되는 공습에 불타 폐허가 되었다.

어느 날, 가마타의 타다 남은 거리 한 모퉁이를 깊은 생각에 잠겨 걷고 있었다. 전쟁이 끝나는 해 봄이었다. 아직 전쟁은 계속되고 있었다. 돌연히 눈앞이 밝아졌다. 몇 그루의 벚나무가 살아남아 꽃을 피우고 있었던 것이다. 어두운 잿빛 거리 속에 그곳에만 불이 켜진 것처럼 아름다운 색채가 빛났다. 꽃이 가지마다 목숨을 다해 피어 있었다. 그때 벚나무는 확실히 넘치는 ‘생(生)’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그 무렵 국가주의자는 벚꽃을 ‘죽음’의 상징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깨끗하게 죽어라”며 몇 백만 청춘의 벚꽃을 ‘죽음’으로 내몰았다. 내 벗도 내 형도 먼 남쪽 바다 너머에서 꽃이 지듯 전사했다.

벚꽃이 지네
남은 벚꽃도 끝내 지네

지지 않고 살아남은 나는 17세였다. 매년 떨어지는 벚꽃의 인생. 사람은 떨어지는 벚꽃에 동질감을 느끼며 인생을 깊이 주시하게 된다. 도다 선생님도 벚꽃을 좋아하셨다. 말씀 중에, “벚꽃이 필 무렵에”라거나 “벚꽃 길을 걷자”고 종종 언급하셨다. 이치가야에서 함께 만개한 벚꽃을 바라본 일도 있다. 도랑가에 발을 멈추고 은사는 “엄한의 겨울을 견뎌내고 저 벚꽃이 핀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 명화(名畵)는 암굴왕(巖窟王)인 선생님 흉중의 어느 벚꽃과 겹쳐지고 있었다.

“겨울은 반드시 봄이 되느니라” 하고 절실히 말하는 선생님이셨다. 그리고 “벚꽃이 필 무렵에 죽고 싶다”고 은연 중에 말씀하시고 그 소원대로 서거하셨다. 사람 마음을 봄의 행복한 향기로 가득 채우고 떳떳하고 장엄하게 지는 벚꽃. 그것은 은사의 위대한 생애와 겹친다.

금붕어가 뛰어올랐다. 꽃잎의 뗏목이 편대를 바꿨다. 바람도, 또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도 춤추었다. 한 잎 한 잎 목숨을 얻은 것처럼 빛내며 날아간다. 연못이라는 하늘을 향해 기쁘게 상승해 간다. 그렇다. 땅 위의 벚꽃은 지더라도 연못에서는 지금 벚꽃이 피기 시작한 것이다. 땅 위의 벚꽃도 단지 떨어진 것이 아니다. 한창때의 목숨이 충만한 것이다. 충실의 극치를 다한 생명의 꽃을 대지에 선물한다.

사진을 촬영한 것은 1994년 4월 7일이었다. 저녁에는 중국에서 오신 인민대외우호협회의 손님을 맞이했다. 그들은 중일우호를 기념하여 ‘현대중국거장서화전’을 개최해주셨던 것이다.

백화제방(百花齊放:온갖 꽃이 일제히 피어남)의 예술에 평화의 마음이 풍겼다. 왕샤오시안 부회장이 저우언라이 총리 부부와 내가 나눈 ‘벚꽃의 인연’을 말했다. ‘벚꽃이 필 무렵에’ 일본을 떠났다고 50년 전을 회상하며 내게 말씀하신 주 총리. “벚꽃이 필 무렵에 일본에 또 와 주십시오.”라고 당부한 나. ‘벚꽃이 필 무렵에’ 일본을 방문하여 총리의 염원을 달성하신 총리의 부인. ‘벚꽃이 필 무렵에.’ 이것이 주 총리가 내게 마지막 남긴 말이었다.

꽃잎에 꽃잎이 겹치듯 추억에 추억을 겹쳐, 이 일생을 활짝 꽃피워 장식하고 싶다. ‘내 벗도 이와 같아라’ 하고 나는 기원한다. 꽃의 왕, 벚꽃은 ‘끝까지 산 왕자(王者)’의 상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