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카이브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은 평화운동가, 불교철학자, 교육자, 작가 그리고 시인으로 대화를 통한 평화 증진에 평생을 바쳤습니다.

  • Words of Wisdom 희망찬 내일을 위한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의 명언

  • Dialogue with Nature 이케다 다이사쿠 선생님의 사진 작품, 자연과의 대화

  • The Life Story of Daisaku Ikeda 이케다 다이사쿠 생애

에세이

아름다운 지구

네팔의 모자(母子)

첫 방문인데도 왠지 정겹게 느껴졌다.
네팔에는 몇십 년 전의 일본과 닮은 풍경이 여기저기에 펼쳐져 있었다.
조용하고 한가로운 전원(田園).
풀을 뜯는 어미소와 송아지.
흙투성이가 되어 노는 아이들.
가을 수확기였다.
농가 앞마당에는 어디나 탈곡을 마친 볏짚이 쌓여 있었다.

1995년 11월 3일. 나는 국립 트리부반대학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의식이 끝나고 히말라야를 촬영하기 위해 교외 언덕으로 향했다. 차로 한 시간. 수도 카트만두시의 떠들썩한 거리를 빠져나오자 차창의 스크린에는 전혀 다른 시정(詩情) 풍부한 광경이 차례차례 비치기 시작했다. 여행의 피로도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차가 거의 목적지에 다다를 무렵이었다.볏짚을 등에 가득 짊어진 소녀가 눈앞을 지나갔다. 나와 아내는 차에서 내렸다.

‘나마스까르!’ ― 네팔식 합장을 하고서 ‘안녕하세요’ 인사를 했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방긋 웃는 얼굴을 보여 주었다. 핑크색 상의가 예쁘고 귀엽다. 볏짚을 지탱하는 머리벨트조차 장신구처럼 보인다. 곧바로 저쪽에서 꼬마가 화살같이 달려왔다. ‘누나는 뭘 하고 있는 걸까?’ 하고 생각한 것일까? 귀여운 손에는 간식으로 보이는 조그만 당근을 쥐고 있다. 어머니도 뒤따라오셨다. 어머니 등에도 볏짚이 가득 실려 있었다. 네팔은 앞으로 건기. 풀이 마르기 때문에 가축 사료로 볏짚을 썰어 먹인다고 한다. 내가 미소 지으며 카메라를 들이대자 어머니가 꼬마에게 뭔가 속삭였다. “사진을 찍어 준대. 자, 웃어 보렴.” 그런 말이었을까.

나는 이 ‘네팔 모자(母子)’의 사진을 좋아한다. 인간의 원점이라고 할까, 가족과 함께 끝까지 살아가자, 열심히 노력하자는 따뜻함이 있고 마음의 빛이 있다. 딸도 ‘어머니에게 지지 않을 정도로 많은 볏짚을 질 수 있게 된 것이 기뻐서 어찌할 줄 모르는’ 그런 밝은 얼굴이다. ‘엄마. 동생도 곧 크게 자라니, 더욱 편해질 거예요.’ 그런 대화가 들려온다. 햇 볏짚의 향기가 신선했다. 햇볕을 가득 쬔 냄새가 났다.

네팔 어린이들은 부지런하다. 5살 정도가 되면 더 어린아이를 돌보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을 도와주기 시작한다. 어린이들은 일하는 부모의 모습을 보면서 또 도우며, 자연과 사회의 법칙을 배우고 살아가는 도리를 배운다. 분명 어린이들은 성장하여 뭔가에 좌절하려 할 때 어머니 이마에 반짝이던 땀을 떠올리며 다시 일어설 것이다. 틀림없이 어린이들은 성장하여 어려움에 포기하고 싶어질 때, 짐을 가득 짊어진 어머니의 등을 떠올리며 다시 걷기 시작할 것이다. ‘저 등을 생각하면 어떠한 노고라 해도 참을 수 있다’라고 생각하며. 어머니를 잊지 않을 때, 인간은 그릇된 길을 가지 않는다. 어머니를 잊을 때 인생행로는 위험하다.

내 은사는 스무 살의 봄, 뜻을 세워 아직 눈이 남아 있는 홋카이도에서 상경했다. 어머니는 질긴 무명으로 짠 한 벌의 아쓰시를 선생님에게 주었다. “어떤 괴로운 일이 있어도 이것을 입고 일하면 뭐든지 할 수 있다”라고 하시며. 흰 바탕에 곤색 무늬. 실(絲)로 무명지를 촘촘히 누빈 아쓰시에는 바늘 한올 한올에 어머니의 정성이 담겨 있었다. 은사는 평생 곁에 두었다. 군국주의와의 옥중 투쟁에서 출옥하여 자택에 돌아오신 때에도 아쓰시가 전화(戰火)를 피해 무사한 것을 알자 선생님은 무엇보다도 기뻐하며 부인에게 말씀하셨다. “이 아쓰시가 무사한 이상, 나는 괜찮다. 생활에 관한 것 등은 걱정하지 마라.” 마음에 어머니가 있는 사람은 강하고 행복하다. 어머니가 없는 사람, 어머니의 사랑을 모르고 자란 사람에게도 수많은 창가가족이 있다.

네팔에서는 4월부터 5월 중 하루를 ‘어머니를 우러러보는 날’로 하여 모두가 최고의 가정 요리로 축하한다고 한다.
어린이들은 어머니에게 선물하기 위해 저금통을 턴다. 결혼한 딸들도 친정에 돌아와 일가족은 떠들썩한 웃음으로 감싸인다. ‘어머니를 우러러보는 날’. 딸과 아들들은 어머니 앞에서 머리를 조아려 절하고 어머니는 자식들의 이마를 손으로 어루만져 축복을 한다.
‘어머니를 우러러보는’ 인생은 풍요롭고 행복하다.
“어머니, 감사합니다.”
그 한 마디에 행복은 꽃다발처럼 가득 채워진다.
태어난 것에 대한 감사. 지금 이곳에 살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
가난해도 우리집을 궁전처럼 즐겁게 해주신 어머니!
늦가을 찬바람 부는 날에도 당신이 웃으면 태양처럼 따뜻해지는 불가사의한 힘의 어머니!
힘 있는 자가 위세를 부리면 반드시 학대받는 쪽을 편들어 “힘내라, 힘내라”고 응원하시는 어머니!
편지에는 언제나 언제나 “몸 조심하라”고 그것만 써오신 어머니!
이번에는 우리들이 자애를 보냅니다 ―.
어머니, 감사합니다!

‘어머니에 대한 감사’가 지구를 감쌀 때 평화는 찾아온다. ‘생명존엄의 세기’는 찾아온다. 네팔의 사이 좋은 모자(母子)와 헤어지고 전망 좋은 언덕에 서자 마을에는 저녁 짓는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 단란함을 저 멀리 상공에서 히말라야가 위대한 아버지처럼 지켜보고 있었다.